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원주 거돈사지 원공국사탑


문화재분류

보물 제190호

주소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귀래교차로 운남2리|부론|귀래 방면으로 우측방향(531번 지방도) - 귀래교차로 귀래 방면으로 우회전(운남길) - 부론면 정산리

상세내용

◇시대 : 고려초 승려 원공국사 사리탑

◇내력 및 유구현황: 이 탑은 강원도 원주시(原州市) 부론면(富論面) 정산리(鼎山里)에 있던 거돈사의 절터에서 1948년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탑은 서울로 옮겨졌으나 탑비(塔碑)는 아직도 강원도의 원주 부론면 원위치에 서 있다. 거돈사터에 남아 있던 고려 전기의 승려 원공국사의 사리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사람의 집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팔각원당(八角圓堂) 형식으로 큰스님의 사리를 모신 부도인 이 승묘탑(勝妙塔)은 모양이 신라 부도의 양식을 이어받은 것이다. 원공국사(圓空國師)는 고려 태조(太祖) 13년(930)에 출생하여 현종(顯宗) 9년(1018)에 88세로 입적한 고려 초기의 고승(高僧)이다.
이 탑은 고려 초기 거돈사에서 입적한 고승 원공국사(圓空國師, 930 ~ 1018년)의 사리탑으로 보물 제78호 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비와 함께 1025년 고려 현종 때 거돈사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공국사는 고려 초기의 천태학승(天台學僧)으로, 속성(俗姓)은 전주(全州) 이씨(李氏), 자(字)는 신칙(神則)이다. 8세에 사나사(舍那寺)에 머물고 있던 인도승(印度僧) 홍범삼장(弘梵三藏)에게 출가하였다. 홍범삼장이 인도로 돌아가자 광화사(廣化寺) 경철(景哲)에게 수업하여 946년(정종 1) 영통사(靈通寺) 관단(官檀)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953년(광종 4) 희양산(曦陽山)의 형초선사(逈超禪師) 밑에서 수행하였고, 954년 승과(僧科)에 합격하였다. 959년 광종(光宗)의 환대를 받으며 구법(求法)을 위해 오월국(吳越國)으로 유학하여 영명사(永明寺) 연수(延壽)에게 법안종(法眼宗)을 배웠고, 961년 국청사(國淸寺) 정광(淨光)에게 '대정혜론(大定慧論)'을 배워 천태교(天台敎)를 전수받았다. 968년 전교원(傳敎院)에서 '대정혜론'과 '법화경(法華經)'을 강의하여 명성을 떨쳤다. 2007년 11월 26일 세워진 이 재현품은 중요무형문화재 석장으로 지정된 이재순씨가 제작했다. 이 탑은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8각 사리탑으로, 모양이 단정하고 아담한 통일신라 부도의 양식을 이어받아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기며, 전체에 흐르는 조각이 장엄하여 한층 화려하게 보인다.

◇양식적 특징 : 탑비의 건립년대는 고려 현종 16년(1025)에 해당하는 ‘태평을축추칠월(太平乙丑秋七月)로 되어 있으므로 이 사리탑도 그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8각 사리탑으로, 모양이 단정하고 아담한 통일신라 부도의 양식을 이어받아 조형의 비례가 좋고 중후한 품격을 풍기며, 전체에 흐르는 조각이 장엄하여 한층 화려하게 보인다. 현재 탑은 바닥돌이 없이 바로 기단(基壇)이 시작되고 있다. 세 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은 각 부분이 8각으로,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긴 후, 그 안에 꽃 모양의 무늬를 두었다. 가운데받침돌은 아래·위에 테를 돌리고 안상 안에 8부 신중(八部神衆)을 새겼다. 윗받침돌에는 활짝 핀 연꽃잎을 2중으로 돌려 새겼다. 8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는데 여덟 곳의 기둥마다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각 면에는 앞뒤 양면에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좌우 양 면에는 창문 모양을, 그리고 남은 네 면에는 4천왕입상(四天王立像)을 새겼다. 지붕돌 역시 8각으로 몸돌과 닿는 곳에 4단의 받침을 표현하고, 그 위에 서까래를 모방하여 새겼다. 처마는 얇고, 여덟 귀퉁이에는 치켜올림이 뚜렷하며, 낙수면에 새겨진 기와골 조각은 처마에 이르러 막새기와의 모양까지 표현해 놓아 목조 건축의 지붕 모습을 충실히 본떴다. 꼭대기에는 8각형의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가 얹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