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

원주 (전)흥법사지 염거화상탑


문화재분류

국보 제104호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흥법사지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동화산업단지 방면으로 우측방향 - 좌회전(흥법사지길) - 흥법사지

상세내용

◇시대 : 통일신라 말기 승려 염거화상의 사리탑.
◇내력 : 염거화상(?∼844)은 도의선사의 제자로, 염거화상은 가지산문의 제2조로서 선(禪)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당시 주로 설악산 억성사에 머물며 선을 널리 알리는데 힘썼다. 체징에게 그 맥을 전하여 터전을 마련한 뒤 문성왕 6년(844)에 입적하였다. 이 부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뜰에 남아 있는데, 원소재지나 연대 등은 아직도 불확실한 점들이 있다. 원주 흥법사지에서 1914년경 서울의 파고다공원으로 옮겨졌다고 하며, 해방 뒤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경복궁 중건 공사로 1990년대에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뒷뜰로 옮겨졌다가, 2004년 현재의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앞뜰로 옮겨졌다. 이 부도 안에서 나왔다고 하는 염거화상명탑지(廉巨和尙銘塔誌) 동판(銅板)에 근거하여 844년 입적한 염거화상의 부도로 생각하고 있다.

◇양식적 특징 : 신라 부도 전형 양식의 기원이 되는 것은 도의선사의 제자인 염거화상의 부도이다. 이 부도는 마치 장고의 몸체를 연상케 하는 형태[고복형(鼓腹形)]의 연꽃 받침대에 8각당을 얹은 모습[팔각원당형(八角圓堂型)]을 하고 있다. 염거화상의 부도는 이후 하대 신라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모든 부도의 기본 형태가 되고 있으므로 중요하다. 이 부도의 옥개석 지붕모양은 기왓골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막새기와 모양, 밑면의 서까래 표현 등은 거의 실제 건물의 기와지붕을 조각되어 있다. 처마 밑에는 비천, 탑신에는 사천왕, 탑신받침 안상(眼象) 안의 천인(天人), 상대석의 연꽃잎, 중대석의 여러 무늬, 하대석의 사자 등이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8각형 건물 모양을 모사한 부도이다. 탑은 각 부분이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기단(基壇)은 밑돌·가운데돌·윗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륜부에 머리장식이 탑을 옮기기 전까지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 탑을 옮겨 세울 때 그 안에서 금동탑지(金銅塔誌)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통일신라 문성왕 6년(844)에 이 탑을 세웠음을 알게 되었다. 사리탑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단아한 기품과 깨끗한 솜씨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후 대부분의 사리탑이 이 양식을 따르고 있어 그 최초의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다. 염거화상의 제자인 보조선사의 부도(880)에 이르면 9세기 하대 신라의 석조물에서 부도가 지닌 위치를 확연히 확인하게 된다. 9세기 경주의 중앙 귀족 문화를 본뜬 석탑은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졌다 할지라도 새로운 양식인 부도의 건조에는 온갖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