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다사 동종

용다사 동종


문화재분류

유형문화재 제 133호

주소

강원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 (학곡리, 구룡사)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봉학사거리 횡성|원주IC 방면으로 좌회전(북원로) - 영동고속도로 원주IC삼거리 이후 약 11분 소요 - 학곡삼거리 치악산|구룡사|옻칠기.한지공예관 방면으로 좌회전(구룡사로) - 구룡사

상세내용

◇시대 : 조선후기 동종

◇내력 및 유물 현황 : 이 종은 1787년(정조 11) 화천 용화산 용다사(龍茶寺)에서 처음 주성(鑄成)된 후 1878년(고종 15) 양구 심곡사에 시주되어 오다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원주 구룡사에서 보관해 오던 동종이다. 1977년부터 강원도향토박물관에서 전시되다가 1999년 9월 월정사로 옮겨져 현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원래 구룡사 소유였으나 1997년 12월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완공됨에 따라 월정사를 중심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에 속하는 강원도 남부 약 60여 개 전통사찰에 봉안된 성보문화재를 보관·전시하면서 반출되었다.

◇양식적 특징 : 이 종은 양식적으로 대수롭지는 않지만 소위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이 있으며, 이 종을 모셨던 두 절의 이름이 나오고, 한글명에 대해서는 문헌에서도 확인이 되며, 이 시기에 한글명문이 새겨진 종은 그 예(例)가 드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종의 정상부에는 한 몸체에 용머리가 서로 반대쪽으로 있는 용뉴가 있다.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으로 종신(鐘身)과의 사이에는 한 줄의 띠를 돌려 구분하였는데, 용뉴를 중심으로 연꽃무늬를 양각하였다. 종신에는 세 줄의 띠를 돌려 네 부분으로 구획하였을 뿐 일체의 장식이 없다. 종신의 상단부와 하단부에는 각각 한글과 한자로 된 명문이 있다. 상단부의 한글 명문은 종을 다시 양구 심곡사에 시주할 당시의 발원문으로, 한글을 굵은 글씨로 새기고 붉은 칠을 하였다. 하단부의 한자 명문은 종을 처음 주성할 때의 주종기로, 1787년 낭천(狼川) 용화산 용다사에서 처음 종을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낭천은 지금의 화천군이며, 용화산은 화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인데 용다사는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종의 정상부에는 한 몸체에 용머리가 서로 반대쪽으로 있는 오메가(Ω)형[一體雙頭形]의 용뉴가 있다. 천판(天板)은 반구형(半球形)으로 종신(鐘身)과의 사이에는 한 줄의 띠를 돌려 구분하고 있는데, 용뉴를 중심으로 연꽃무늬를 조잡하게 돋을새김(陽刻)하였다. 종신에는 세 줄의 띠를 돌려 4개의 부분으로 구획하였을 뿐, 상, 하대와 보살입상, 유곽 등 일체의 장식을 구비하지 않고 소면(素面)으로 처리하였다. 종신의 상단부와 하단부에 각각 한글과 한자로 된 명문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중 하단부의 한자 명문은 종을 처음 주성할 때의 주종기로, 1787년(건륭[乾隆] 52, 정조 11) 낭천(狼川) 용화산(龍華山) 용다사(龍茶寺)에서 처음 종을 주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낭천은 현재의 화천군이며, 용화산은 화천군과 춘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나 용다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상단부의 한글 명문은 종을 다시 시주될 당시의 발원문으로, 한글을 굵은 글씨로 잘 새기고 붉은 칠을 하였다. 내용은 1879년(광서[光緖] 5, 고종 16) 경성에 거주하는 청신녀(淸信女) 황씨(黃氏, 법명 蓮池願)가 양구군 동면 팔랑리의 심곡사에 시주했다는 것으로, 이러한 사실은《건봉사본말사적(乾鳳寺本末史蹟)》의 심곡사사적(深谷寺史蹟)에서도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