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사 대웅전

상원사 대웅전


문화재분류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

주소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로 930 (성남리)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봉학사거리 횡성|원주IC 방면으로 좌회전(북원로) - 영동고속도로 원주IC삼거리 이후 약 10분 소요 - 새말IC 안흥|치악산|구룡사 방면으로 우측방향(442번 지방도) - 상원사 대웅전

상세내용

◇시대 및 용도: 백제, 혹은 신라 말기 치악산 남쪽에 위치한 상원사 대웅전

◇내력 및 건물유구현황 : 상원사는 치악산 남쪽 남태봉 중턱의 해발 1,100m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다. 상원사는 백제 성왕 24년(546)에 고봉과 발용 두 스님이 세웠다는 설도 있으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王師)였던 무착스님[無着禪師]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에 나옹(懶翁)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위학(偉學)·정암(靜巖)·해봉(海峯)·삼공(三空)·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 되었던 것을 1968년 당시 주지인 송문영(宋文永) 법사(法師)와 의성보살(義成菩薩)에 의하여 다시 복구되었으나 198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되었다. 높은 곳에 조성된 사찰답게 자연 지형에 맞게 배치되었다. 이 사찰은 또한 근세 불교사의 최고 선승으로 4차례나 종정에 추대된 방한암(方漢巖) 선사가 계셨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웅전의 좌측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焰紋)을 보이는 불상광배와 연화대석이 남아 있어 본래 석불이 있었음을 추정케 하나 현재 발견되지는 않았다. 이밖에도 절 뒤쪽 2백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가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 무착선사가 수도 중에 큰 뱀에게 잡아 먹히게 된 꿩을 구해주었더니 한밤중에 종이 울리지 않으면 무착선사가 죽게 되는 위급한 상황에서 꿩이 은혜를 갚기 위해 자기 몸을 부딪혀 종을 울리고 죽으므로 생명을 구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산의 명칭도 적악산(赤岳山)이던 것을 꿩치(雉)자로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상원사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이밖에도 김시습(金時習)의 매월당집(梅月堂集), 권벌의 충재집, 이민구(李敏求)의 동주집(東州集), 이상(李翔)의 타우유고(打愚遺稿) 등에도 상원사와 관련된 시가 전해오고 있다.

◇양식적 특징 :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4년 6월 2일에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심우당(尋牛堂)·심검당(尋劍堂)·범종각·산신각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3칸(8.4m)·측면 2칸(5.3m)의 겉처마 팔작지붕에 다포집이다. 법당의 불상은 새로 봉안한 것이고, 석가래와 기둥 등은 모두 정연하며 두공부에 용두(龍頭)조각을 배치하여 주목을 끈다. 근년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보이는 질서 있는 건축물이다. 안쪽에는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및 후불탱화, 지장탱화, 신중탱화를 모시고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