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호 묘역

원호 묘역


문화재분류

원주시 향토유적 제 2009-2호

주소

강원 원주시 판부면 내남송길 131-13 (서곡리)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우회전(북원로) - 제천|신림 방면으로 좌회전 - 내남송 방면으로 좌회전(내남송길) - 원호묘역

상세내용

◇시대 : 1463년 조선 단종 때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원호를 모신 묘

◇내력 및 유구현황 : 원호(元昊, 1397~1463)는 본관이 원주,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무항(霧巷)이다. 원호는 원주시 송림(지금의 개운동)에서 익흥군(益興君) 원헌(元憲)과 국자감 진사 원천상(元天常)의 따님인 원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글공부를 좋아하여 15세를 넘어서는 사서삼경에 통달하고 도학군자라는 칭호를 들었다.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하고 학자로 인정받아 성삼문·정인지 등과 함께 각종 편찬사업에 참여했으며,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자 낙향하였고,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 사육신(死六臣)을 비롯한 관련자들이 죽고 단종(端宗)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자, 원호는 단종을 가까이 모시기 위해 청령포 서쪽 상류인 사내평에 관란재(觀瀾齋)를 짓고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바라보며 단종을 사모하였다. 돌을 모아 대를 만들고 그 위에 올라가 청령포를 바라보며 “간밤에 우던 여울 슬피울어 지내거다 이제와 생각하니 임이 울어 보내거다 저 멀리 거슬러 흐르고저 나도 울어보내도다”라는 시를 지었다. 1457년 단종이 승하하자 백덕산에 흙을 모아 집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세조가 불렀으나 끝까지 왕명을 따르지 않아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굳은 절개를 보여주었다. 1703년(숙종 29) 칠봉서원(七峰書院)에 배향되었다. 1782년 김시습·남효온·성담수와 함께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