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처럼 멋드러진 암봉이 12개나 치솟아 독특한 산세를 나타내며 바위틈을 비집고 붙어있는 노송의 절묘함
원주시 남쪽, 충주시 소태면과 경계를 맞댄 귀래면의 미륵산(689m)은 기암 괴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산이다. 미륵산은 정상에 거대한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석처럼 멋드러진 암봉이 12개나 치솟아 독특한 산세를 나타내며 바위틈을 비집고 붙어있는 노송이 그 절묘함을 더한다. 겨울철에는 노송과 암벽에 피어 있는 설화가 일품이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부드러운 능선길과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산행의 정취와 묘미를 느끼게 한다. 정상인 신선대에서 북동쪽을 보면 백운산과 치악산맥이 보이며 동으로는 십자봉이, 남서쪽 멀리로는 남한강 물줄기가 보인다. 신선대 아래의 미륵불상을 지나고 동쪽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황산사이다. 신라 경순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미륵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경천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신라가 쇠약해진 틈에 후삼국이 형성되고 고려의 왕건이 세를 키워가자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전쟁을 하지 않고 고려에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 뒤 전국의 명산을 두루 다니다가 용화산(지금의 미륵산)에 올라 수려한 경관에 반해 그 정상에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 학수사와 고자암이란 절을 짓고 의탁하였던 곳이다
경천묘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다 보면 황산사터가 나온다. 예전엔 큰 절이었으나 세월의 흐르고 지금은 3층석탑과 부도들만이 그 터를 지키고 있다. 황산사는 신라 경애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3층석탑은 탑은 기단부(基壇部)가 없이 자연 암반 위에 넓게 깎은 2장의 돌과 그 위에 2단의 굄돌을 놓고, 3층의 석탑을 세웠다. 탑의 몸돌에는 귀퉁이 기둥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크고 두꺼우며, 처마는 받침을 3단으로 만들었다. 3층 지붕돌 위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큼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두꺼운 지붕돌에 비해 몸돌이 가늘고 높아 전체적으로 길쭉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미륵산 정상 미륵봉 바위벼랑에는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어 유명하다. 미륵산 정상(해발 689m)의 절벽(높이 15.6m)에 동쪽을 향해 높이 48척의 초대형 미륵이 새겨져있는데, 코의 길이만 해도 사람의 키를 넘을 정도로 가까이에서는 그 모양을 알아볼 수가 없고 멀리서 바라보아야만 형체를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용화산이라 불리었는데 이후 용화산을 미륵산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미륵불이란 미래 인간 세상에 내려올 부처를 일컫는다. 미륵불이 내려와 만드는 세상은 물이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며, 곡식이 풍족하고 인구가 번창하며, 사계절이 순조로워서 질병이 없고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서로가 즐거워하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이를 기원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을과 산천의 이름에 미륵을 붙이고, 미륵불상을 조각해 세우면서 미륵 세상을 꿈꾸었으며 하루라도 빨리 미륵불이 세상에 내려와 힘겨운 자신들을 구원해주길 갈망했고 그 갈망했던 모습이 미륵불에 담겨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미륵불상은 신라의 56대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고 미륵산은 경순왕의 애환이 서린 산이라고 전해져 온다.
또 미륵불의 코를 만지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도 있다. 요즘에는 미륵산 실제 정상인 695.6m봉으로 직등하는 코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부드러운 능선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조화를 이룬 미륵산은 수도권 에서 두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어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산이다. 미륵산은 그 이름처럼 온화한 산세를 갖고 있어 주위에 사찰과 농원등의 볼거리도 많다. 가는 길에 보이는 커다란 느티나무들은 마치를 마을을 지키는 수호령 같다.
귀래행 31번 버스는 1일 28회 운행하며 문막을 경유하는 55번 버스는 1일 19회 운행을 한다. 55번 버스는 황산골 입구에서 하차하면 되고 31번 버스는 운계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이용한다
소재지 : 원주시 귀래면 주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