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


문화재분류

국보 제 59호

주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산74번지

자가용이용

주시외버스터미널 - 중앙고속도로 남원주IC 이후 약 5분 소요 -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 이후 약 9분 소요 - 문막IC 여주|부론 방면으로 좌회전(원문로) - 원주법천사지

자가용이용

◇시대 : 11세기(1085년, 고려 선종 2), 고려시대 지광국사의 행적이 기록된 탑비

◇내력 : 이 탑비는 지광국사(智光國師)의 행적을 기록되어 있으며, 지광국사의 사리를 모신 현묘탑(국보 101호)은 우리나라 부도 중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것으로, 원래 이 절에 있었으나,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다. 비문은 11세기 석비를 대표하는 걸작품으로서 비석의 재질은 연한 청색의 점판암이다. 글은 고려 초의 문장가인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구양순체로 썼다. 비의 앞면은 지광국사가 수도한 내력을 적고 있다.
지광국사 해린(海鱗, 984~1070)의 속성이 원씨(元氏)로 원주의 토착세력 출신이었다. 법고사 관웅대사밑에서 수학하고 관웅대사를 따라 개경에 들어가 준광에게 출가하였으며 16세때 용흥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1004년(목종 7) 21세에 승과에 합격한 이후 법상종 승려로서 대덕(大德)이 되었다. 고려 초 현종은 현황사를 창건하고 대대적으로 법상종 교단을 지원하였는데, 혜린은 71세인 1054년(문종 8) 개경에 있는 현화사 주지를 맡아 경전을 판각하였다. 그는 삼중대사?승통?왕사의 칭호를 받았고, 74세때인 1057년(문종 11)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추대되었으며, 1070년(고려 문종 24) 이 절에서 돌아가셨다. 뒷면에는 1370여 명에 이르는 국사의 제자 이름 및 인원수를 적었다. 비석을 세운 연대는 1085년(고려 선종 2)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식적 특징 : 인근에 지광국사 현묘탑이 있었으나 이탑은 현재 경복궁내에 있다. 기단 사방에 각형 초석이 배열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탑비는 보호전각 속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은 귀부위에 방형 비좌를 조성하고 홈을 판 다음 비신 하단에 장부를 내여 맞추어 세운 석비이다. 비석의 윗 부분인 이수(?首)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 중심부는 탑의 상륜부와 같이 하늘을 나는 천녀(天女)?해?달 등과 함께 불교의 이상 세계인 수미산(須彌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복발위에 연꽃이 조각된 세 개의 보륜이 올려져 있다. 이수(?首) 하단부는 탑의 탑신석을 전사한 것으로 건물 추녀가 하늘로 활짝 벌려 있는 모습처럼 네 귀퉁이와 그 사이에 꽃을 조각하여 날아갈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중간 중간 보이는 두 개의 연꽃잎과 구름 속의 용(龍)을 환상적인 조각은 암막새 기와를 불교적 맥락으로 조형화 한 창의적인 도상으로 평가된다. 기단부가 2단의 장대석으로 되어 있는 점은 외벌대 장대석으로 기단이 조선된 영월 흥녕사 대사탑비와 다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