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거돈사지

원주 거돈사지


문화재분류

사적 제168호

주소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3리 189번지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충주|시청 방면으로 좌회전(로아노크로) - 귀래교차로 운남2리|부론|귀래 방면으로 우측방향(531번 지방도) - 귀래교차로 귀래 방면으로 우회전(운남길) - 부론면 정산리

상세내용

◇시대 : 신라 말기~ 고려 초기 거돈사의 옛 터
◇유구현황 : 법천리에서 황학산 오른편 산길로 잠자울 고개를 너고 학고개를 너머서면 작은 골짜기너머로 정산면 담안리가 있는데 그 윗터에 한계산 기슭을 안고 펼쳐진 절터이다. 이 절터 남쪽사면으로 흐르는 한줄기가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져 고려 초기에 확장·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중문터, 탑, 금당터, 강당터, 승방터, 회랑 등이 확인되었다. 중문지 북쪽에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3층석탑(보물 제750호)이 있고 탑의 동쪽에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제78호)가 있고 부도 원공국사승묘탑(보물 제190호)이 있었는데 현재 경복궁 뜰 안에 옮겨져 있다.

◇내력 : 거돈사는 신라말 안락사로 신라 왕실의 후원으로 도헌이 활동하던 곳이었다. 고려 초기 불교계의 중심이었던 법안종의 주요 사찰이었으나 고려 중기 천태종이 유행하면서 천태종 사찰로 흡수된 거돈사는 신라말 고려초의 절터로서 보기 드문 일탑식 가람으로 주목할 만한 곳이다. 중심인물인 원공국사(圓空國師, 930~1018)는 속성은 이씨이며 본관은 전주이다. 법호가 지종(智宗)인 그는 여덟살 나이에 개경 사나사(邪那寺)에서 출가 광화사의 경천화상으로부터 공부를 했고 17세에 송악산 영통사에서 주족계를 받았다. 955년 중국 오월에 유학하여 법안종(法眼宗)의 법맥을 전수받았다. 그 후 중국 천태종 근본도량인 천태산 국청사에서‘대정혜론(大定慧論)을 배우고 천태종지를 가르치는 교수사가 되어 970년 고려로 돌아왔다. 그는 귀국 후 왕권 강화를 위해 개혁정치를 표방하던 광종의 비호를 받으며 법안종 세력을 고려 불교계에 크게 떨쳤다. 그러나 광종이 사망하고 그의 급진적 개혁정치가 중도에 그치면서 법안종 세력도 급속도로 위축되고 원공국사도 89세인 1018년 병든 몸을 이끌고 거돈사에 이르러 임종을 맞았다. 입멸 후 현종으로부터 국사 원공으로 추증된 그는 탑비와 함께 비의 서쪽 기슭에 부도가 건립되었다. 그러나 지금 거돈사 터에는 현종16년(1025) 조성된 부도비(보물제78호)만 남아 있고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은 짝을 이루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와다(和田)가 서울의 자기 집으로 옮겨간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긴 이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절터 아래 옛 정산분교 자리에 있지만, 완성되지 않은 거대한 당간지주를 보면 이 절의 규모가 짐작된다.

◇양식적 특성 : 이 절터는 현재 남아 있는 3층석탑(보물 제759호)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경사가 좀 센 까닭에 석축을 높이 쌓아 조성한 평지에 중문지를 만들고 이러 일탑 일금당식 가람 배치를 중심으로 동남축으로 가람을 전개하여 금당 후면 강당지 까지 회랑으로 둘러싸인 거돈사지는 삼국시대 고식의 가람배치형식을 지닌 절터이다. 현재 남아 있는 중문지를 지나면 세운 3층 석탑이 있고 바로 뒤에 기단위에 초석이 있고 정면5칸 측면 3칸의 금당터가 있고, 강당지는 초석은 없고 터만 남아 있다. 이 금당은 거돈사의 중심 건물로, 초석의 배열간격으로 보아 중심에 있는 어칸의 길이가 협칸보다 길게 되어 있고 평면 중앙부에 2m 정도 높이의 화강암으로 만든, 부처님을 모시던 불상 대좌가 있다. 대좌에 초석이 있고 그 밑에 적심석이 있다. 그리고 사방에 지대석을 돌린 것으로 보아 불상은 이미 금당이 짓기 전에 먼저 불상을 조성한 후 금당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불상의 크기가 일반 단층목조 건축으로는 불상 높이를 수용하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2층 내지는 3층 구조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금당의 뒤로 낮은 석축이 쌓아 있고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있는 것을 보면 강당지로 추정된다. 금당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축 오른편으로 많은 건물지가 있고 절 뒤편 약한 언덕 위에 지금은 경복궁에 옮겨져 있는 원공국사승묘탑(圓空國師勝妙塔)이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서로 근접해 있어야 할 원공국사승묘탑비(圓空國師勝妙塔碑)는 절의 오른쪽 끝에 자리하고 있는 점이다. 왼쪽 회랑지 끝에 이 절터 발굴에서 나온 각종 석재들이 모여져 있다. 거돈사지는 1968년 2만4천7백 86㎡의 터가 문화재보호구역(사적 제168호)으로 지정되어 1982년부터 토지매입을 시작했다. 91년까지 10여년에 걸쳐 한림대박물관이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벌인 후, 1차로 7천5백평의 사역을 정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