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묘

경천묘


문화재분류

원주시 향토유적 제 2008-1호

주소

강원 원주시 귀래면 미륵산길 200 (주포리)

자가용이용

원주시외버스터미널 - 충주|시청 방면으로 좌회전(로아노크로) - 운계교차로 다둔리|운계리 방면으로 우측방향-문막 방면으로 우회전(귀문로) - 경천묘

상세내용

◇시대 : 고려초 건립, 조선 시기에 거듭 중수, 2006년 복원, 경순왕의 영정을 모신 전각

◇내력 및 유구현황 : 경천묘(敬天廟)는 신라 56대 경순왕(敬順王. ?~979)의 영정(影幀)을 모신 묘우(廟宇)이다. 경순왕은 대보공(大輔公) 김알지(金閼智)의 28세손이며, 이름은 부(傅)이다. 신라 말 927년 경순왕은 왕위에 올랐으나 신라는 이미 사직을 본전할 힘이 미약한 상황이었으므로 935년(경순왕 9년) 이미 운명이 다한 신라의 형편을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고려에 넘기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 경순왕은 두루 다니다가 이곳 용화산(龍華山,현 미륵산)의 빼어남을 보고 그 정상에 올라 미륵불상을 조성하고, 그 아래에 학수사(鶴樹寺)와 고자암(高自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경순왕이 돌아가시자 왕을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影幀閣)의 시발이었다.

◇양식적 특성 : 고려 중기 이후 전각은 무너지고 인적도 끊어졌다가 조선 초에 이색?권근 등에 의해 전각이 다시 지어졌다. 숙종 때 원주목사 김필진(金必桭)이 새로 초상화를 그리고 전각을 지어 모셨으나 화재를 당했고, 영조 때 재건되면서 임금이 영정각의 명칭을‘경천묘(敬天廟)’로 바꾸었다. 그 후 경천묘는 다시 불태워졌으나 경순왕이 머물렀던 유래에 따라 신라 문화를 지켜낸 왕의 충정을 기리고자 원주시가 2006년 9월 이곳 미륵산 아래에 경천묘를 복원하였다. 외곽의 진입문은 평삼문으로 되어 있고 사당 진입문은 솟을 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당우는 조선후기 익공양식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을 지닌 경천묘가 경주 김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경천묘가 경남 하동군 청암면 평촌리 686에 있다.